하늘 아래 2개의 디지털

 

얼마 전 일분톡을 작성하면서, 기사 말미에 ‘하늘 아래 2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다, 2개의 디지털이 있을 뿐‘이라고 정리한 적이 있다. 오늘은 이를 중점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몇 년째 이어지는 미중 무역전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본질은 5G를 둘러싼 디지털 패권 다툼에 있다. 만약 세계 3차대전이 난다면 그것은 인공지능에 의해 벌어질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디지털 강국이 되기 위한 싸움이 치열하다.

그 중 핵심은 5G다. 5G는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자 안보와도 직결되는 핵심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중은 각자의 동맹국을 끼고 ‘쟤네꺼 쓰면 가만안둬’라는 초딩적 따돌림에 열중하고 있다. 5G가 뭐길래?

 

우리는 여전히 안 터지지만, 5G는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자 디지털 시대를 형성하는 젖줄이다. 증기기관이나 전기, 인터넷 등이 과거 산업혁명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5G가 그 역할을 하게 된다.

LTE보다 약 20배가 빠르며, 처리 용량은 100배가 많다. 강점은 초고속, 초저지연성, 초연결성이다. 앞으로 세계는 자율주행차를 타고 가상현실을 누비며, 온갖 사물이 연결되어 인터넷으로 모든 걸 통제할 수 있으며, 원격의료를 받고, 드론배달을 기다리며, 인공지능 로봇과 사랑에도 빠질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하려면 초고속 네트워크가 스무스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5G의 역할이다.


현재 5G 강국은 중국이다. 최근 들어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화웨이가 주인이다. 화웨이는 세계 3위 스마트폰 제조사이자 세계 1위 5G 통신장비 기업이다. 이름 자체가 ‘중화민족을 위하여 분투한다’로, 대표적인 정경유착 기업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대기업이 여전히 비상장이기 때문에 뭔가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는 이유다. 화웨이가 단 시간 내 급성장한 이유도 중국정부의 권력과 자금을 등에 업고, 가성비 좋은 장비로 다른 통신 장비 업체들을 빠르게 밀어낸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화웨이=중국 스파이’라 칭하고 “국가 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곳이므로 절대로 쓰면 안돼!!!”라며 전 세계에 으름장을 놓고 있다. 표면적으론 국가 안보이지만 동시에 5G 영향력을 막겠다는 의도다.

중국은 ‘Made In China 2025’를 통해 5G를 중심으로 최첨단 제조국가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갖는다. 2030년까지 411억 달러의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대적할 만한 기업이 아직 없다. 그래서 중국의 5G를 엄청나게 견제하면서 동맹국 기업과의 연계를 염두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 기업 시스코가 유럽 동종 기업인 에릭슨이나 노키아를 인수하는 방향 등 다방면으로 고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화웨이 못살게굴기 연대표

트럼프의 화웨이 견제는 작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차 공격-국가안보를 이유로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미국 기업과 거래할 수 없도록 막아버리겠다는 것.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는 “화웨이에 타격을 입히려는 미국의 의지가 이토록 굳건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1차 공격만으로 화웨이를 부수기엔 역부족이었다. 시장조사기관 델오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5G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 1위가 화웨이(35.7%), 2위 에릭슨(24.6%), 3위 노키아(15.8%), 4위 삼성(13.2%) 순이다.

그리고 보란 듯이 4월 30일, 중국 이통사 차이나모바일과 함께 에베레스트 해발 6500m 지점에 5G 기지국을 설치하고 ‘세계 최초 세계 최고의 5G 기지국’이라고 자랑했다. “5G 네트워크 구축 속도도 엄청 빨라지고 있어~ 미국 너희들이 아무리 제재해도 우린 끄떡없다규”

지지 않는 미국. 2차 공격을 감행한다. 화웨이로 들어가는 반도체 공급망을 원천차단한다는 것. 미국뿐 아니라 미국 기업과 협력하거나 미국 특허청에 미국 특허로 등록된 기술을 사용하는 제3국까지, 화웨이랑 거래하려면 미국 허락 받아라~ 고 선포했다. 안 판다는 얘기다. 통신장비에 반도체는 필수품인데, 중국은 아직 반도체 제조 기술 수준이 낮아 타 국가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 그러나 정확히 얘기하면 미국 기술을 썼다고 해서 무조건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The Bureau of Industry and Security (BIS) today announced plans to protect U.S. national security by restricting Huawei’s ability to use U.S. technology and software to design and manufacture its semiconductors abroad.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은 화웨이가 미국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서 해외에 자신의 반도체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것을 제한하여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출처: 15일 미국 상무부 홈페이지 보도자료)

즉, 화웨이의 설계도대로 만들어주는 비메모리 반도체를 막았다는 의미다.


슬슬 약발 먹히나

미국 최우방국인 영국이 지난 1월 화웨이 사업 참여를 일부 허용하겠다고 밝히자 트럼프가 대노한 바 있다. 보리스 존슨 총리와 통화하며 격한 분노를 표출했다고. 그런데 영국이 돌연 입장을 바꿔 7월 14일, 자국 5G 네트워크 사업에서 화웨이를 퇴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르면 올해 연말부터 화웨이의 5G 장비를 구매하면 안되며, 이미 구매했다면 2027년까지 철수해야 한다.

마음 놓고 있던 화웨이는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영국은 유럽공략의 전초기지이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나라이기에, ‘다시 한번 생각해줄래’라며 읍소에 들어갔다. ‘우리 5G 안 쓰면 너네 디지털 격차는 심해질거야, 그리고 통신비 증가하는 거 어떻게 감당할래? 그거 다 국민세금이잖아!!’ 라며 결정 재고를 촉구하고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화웨이 퇴출 결정으로 영국 5G 네트워크는 3년 지연되고 20억 파운드(3조원)의 비용이 추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웨이는 미국때문에 캐나다, 일본 시장을 모두 잃었다. 유럽 끈만은 놓치지 않기 위해 유럽공략의 핵심인 영국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총 20억 파운드(3조원)를 쏟아부었고 작년12월에는 런던에 5G 혁신센터를 열기도 했다. 최근 케임브리지 인근에 4억 파운드(5900억원) 규모의 R&D 센터건립을 발표하기도 했다.

영국이 이렇게 말 바꾼 이유로 2가지 요인이 지목된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의 지속적인 압박에 견디지 못한 것. 그리고 영국 국가사이버안보센터(NCSC)에 검토를 의뢰해 보니 우려가 현실화 됐다는 것. NCSC 이언 레비 국장이 14일 자신의 블로그에 “화웨이의 5G제품은 더 많은 보안성과 신뢰성 문제를 겪게될 것”이라는 검토결과를 올린 바 있다.

트럼프 뜻대로 화웨이 죽이기에 성공한다면, 5G 1순위는 유럽 에릭슨과 노키아가 꿰찰 것이며, 아니면 삼성전자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아, 한국이 5G 상용화는 최초다. 작년 4월 3일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 기반 5G 상용화를 달성했다.

화웨이는 현재 5G 세계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이다. 지난달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기술조사업체 자료를 인용해 5G 관련 표준기술특허(SEP) 보도를 내놓은 바 있다. SEP는 특정 사업에 채택된 표준 기술을 구현하는 데 반드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기술 특허다. 보도 내용은 아래와 같다.

유럽통신표준화기구(ETSI)에서 특허권을 받은 5G 기술 중, 실제 5G에 필수적인 것은 1,658건으로 이중 화웨이가 302건(19%)을 보유하고 있다. 다음은 삼성이 256건(15%), LG 228건(14%), 노키아 202건(12%), 퀄컴 191건(11%)다. 전체 특허의 71%를 다섯 개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데, 미국 기업은 퀄컴 한 곳뿐이다. 미국이 5G 응용산업을 활성화하려면 중국에 특허료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만약 지금 미국이 5G 패권에서 진다면, 6G, 7G… 를 따라잡기 힘들 것이다. 강국의 경제권은 중국에 넘어갈 수도 있다. 기를 쓰고 자국 정책을 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