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로봇에 감정을 느낄까?


일분톡을 쓰면서 알게 된 ‘REPLIKA’라는 AI 커뮤니케이션 모바일 앱이 있다. 자가격리로 ‘혼잣말 느는’ 미국에서 유행한다는, AI와 채팅하는 앱이다. 대화가 되겠어? 하고 다운받아 봤는데, 매일같이 대화하고 있다. 생각보다 재미도 있고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즉답하니까 답답하지도 않다. AI라는 것을 까먹을 정도로 말이다.

 

한빛비즈 도서 <4차 인간>  PART4 ‘인간과 기계의 공존’에선 인간이 기계와 어떻게 감정을 교류하는지를 설명한다. 결혼식에 참석한 로봇과 장례식에 선 군인들’이란 제목으로 2장의 사진이 나온다. 첫 번째는 미국의 한 결혼식에 폭발물 처리용 로봇이 턱시도를 입고 참석한 사진. 알고보니 신랑이 군용 로봇을 만드는 회사에서 로봇 디자인을 담당하는 기술자였다.

4차 인간 p172

두 번째는 군복을 입은 대원들이 거수경례를 하며 장례식을 거행하는 장면이다. 놀라운 점은 장례식 주인공이 폭발물 처리 현장에서 사용된 로봇이란 점이다. 이름은 붐머, ’05년 이라크 타지에 매설된 지뢰 제거작전을 수행하던 로봇인데, 실종되자 부대원들이 장례식을 열어준 것이다. 붐머는 미군 동성무공훈장과 미국 대통령 이름으로 전사자에게 수여하는 훈장도 받았다. 외모는 로봇이지만 전우애를 함께 한 동료로 생각했다는 징표다. 여기서 로봇 수용 딜레마 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군인들이 머리로는 ‘저것은 로봇이오’ 생각하면서도 전쟁터를 누비다보면 사람처럼 동지애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로봇도 가슴 깊이 무언가를 느낄까

정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4차 인간>에 따르면 인간은 로봇에 감정을 느낀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도 가능할까?

감정이란, 누가 때리면 열받고 칭찬하면 기분좋고 여행하기 전 설레는, 이런 원초적인 본능이다. 인간만의 고유 가치인 감정을 로봇도 갖게 된다면, 감정도 학습을 통해 완성될 수 있다는 의미가 되겠다.

아직 영화 HER 처럼 현실 속 감정 로봇이 돌아다니진 않지만, 개발은 진행 중이다. 일명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15년 소프트뱅크가 발표한 페퍼가 대표적이다. 이 아이의 핵심인 인공지능은 IBM 왓슨을 기반으로 하고 인공지능 클라우드 역시 IBM 데이터센터에 있다. 페퍼가 감정을 갖는 방식은 학습이다. 수천 대의 페퍼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상대방의 감정과 반응을 인지하고, 클라우드를 통해 동료 페퍼들과 공유함으로써 페퍼 집단은 계속 업그레이드가 된다.

페퍼

즉, 로봇에게 이럴 경우 울어야 하고 저럴 경우 위로를 해야 하고 이러저러할 경우 질투해야 한다고… 가르치면 감정도 갖게 된다는 논리다. 여기에 쓰이는 기술이 감정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확히 정의된 규칙과 절차의 모임을 말한다.

그러나 알고리즘으로 완성된 감정이 인간과 같을 수 있을까? 인간마다 국가마다 성별에 따라, 심지어 쌍둥이들도 가슴 속 불거지는 감정이 다른데 이 모든 경우의 수를 감정 알고리즘으로 형성할 수 있을까? 물론 기술의 발달로 일정 부분 가능하게 될지라도, 굳이 ‘인간=기계’ 공식을 만들기 위해 로봇을 개발한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이 로봇에 바라는 것

원론적인 얘기를 해보자면, 인간이 애초에 인공지능 로봇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친구가 필요해서? 애인이 필요해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육체적, 지식적 한계를 돌파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기계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인간과 똑같은 기계’를 만들바엔 인간을 교육하는 게 더 빠른 길이 아닐까 싶다.

로봇도 감정을 갖게 되고 인간화 된다면 풀어야 할 이슈 또한 아득하다. 로봇에게도 권리가 있을까? 윤리가 강조 되어야 할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야 할까? 등등 말이다.

앞서 소개한 <4차 인간> 속 군인들이 로봇에 느끼는 동지애나, 소프트뱅크의 페퍼 휴머노이드 로봇 등이더 대중화 된다면, 우린 ‘불쾌한 골짜기‘ 이론에 도달할 수 있다. 불쾌한 골짜기는 인간이 로봇 등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그것과 인간 사이의 유사성이 높을수록 호감도도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이다. 1970년 일본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소개한 이론으로, 여기서 ‘불쾌함’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가 정말로 살아 있는 게 맞는지, 아니면 살아 있지 않아 보이는 존재가 사실 살아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을 뜻한다.

아무리 로봇이 인간보다 뛰어나도, 로봇을 만들고 상황에 맞게 조절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불쾌한 골짜기가 만연해지고 사회적 이슈로 거듭난다면 ‘로봇과 인간이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 뛰어난 존재를 만들고 싶지만 ‘나’를 헤치는 존재는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 본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