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거 빼고 다 하는 3D 프린팅


팬데믹이 오면 물자가 동난다. 인류 멸망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상상하다보면 필수품을 쟁여두려는 본능이 꿈틀댄다. 코로나19는 공기가 아닌 비말로 감염되므로 마스크 착용이 필수였다.

빨리빨리로 불리는 한국은 마스크 대란 역시 빠르게 대응했다. 공적마스크 정책(국내 130여개 제조업체가 생산하는 KF-94 마스크의 50%를 정부에서 구매, 전국 2만 3천개 약국에 각각 1500원씩 할인 가격으로 제공), 5부제 실시(출생일에 따라 살 수 있는 마스크 배급제), 약국 마스크 재고 확인 앱(약국에서 줄 서다 허탕치지 말라는 배려) 등이다. 

마스크 대란에 앞서 언급해야 할 것이 이번 팬데믹에서 드러난 세계 각국의 문화차이다. 대표적인 것이 마스크 착용 문화. 한국은 일찌감치 미세먼지 공격으로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된 것이 이번 위기 대응에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반면 미국(공기가 청명하니 마스크가 웬말)에서 마스크란, 중환자나 범죄자를 떠올리는 징표다. 한국에서 마스크가 연예인 필수템이라면, 미국은 범죄자나 테러범이 얼굴 가리는 용도다. 여기에 인식 차이가 플러스된다. 아시아에선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출하지만, 미국에선 환자는 집에 있어야지 마스크를 쓰면서까지 돌아다니는 것을 민폐라고 생각한다는 것.  

어찌됐든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면서, 아이템 부족 현상이 세계 각국에서 나타났다. 더불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확진자 때문에 병원 기기 부족해져갔다. 시간은 없고, 급히 필요한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들어는 봤나, 3D 프린팅

2D가 활자나 그림을 인쇄한다면 3D는 입력한 도면 바탕으로 입체 물품을 만들어낸다. 2D가 앞뒤/좌우로만 운동한다면 3D는 여기에 상하 운동을 더한다. 이러한 3D 프린트는 기업에서 본격적으로 물건을 제작하기 전 시제품을 만들기 위한 용도(일명 목업)로 사용됐다.

시기는 바야흐로 80년대 초. 미국 3C시스템즈 사에서 플라스틱 액체를 굳혀 입체 물품 만들어내는 프린터를 개발한 것이 3D 프린트의 시초다. 물품 한 개 제작하는 데 12-24시간 걸리고 비용도 상당히 비싸서 일부 기업용으로만 한정 사용됐다. 그러나 기술을 발전하는 법. 점차 제작 시간이 짧은 FDM 방식이 상용화되고 플라스틱 소재에서 나일론과 금속 소재로 범위가 확장되면서 상용화 단계로 진입했다. 

 

3D 프린팅 작품들

BMW

통상적으로 자동차에는 약 2만여 가지의 부품들이 들어간다. 절삭, 단조, 프레스, 주조라는 4가지 방식으로 제조되는데, 여기에 3D 프린팅 기법이 추가됐다. 기존 방식보다 생산 공정을 훨씬 더 간소화시켰다는 사실.

이 뿐만이 아니다. BMW가 3D 프린팅에 집중하는 이유는, 기존 방식으로 불가능한 부품 제작을 3D 프린팅이 가능케 해준다는 것이다. 바로 모터스포츠에 들어가는 통합 펌프. 일반 자동차는 연료, 오일, 냉각수를 순환시키기 위해 각각의 펌프가 사용되므로 굉장히 무거워진다. 모터스포츠는 가벼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하나의 펌프로 3가지 액체를 순환시키는 방식이 필요하다. 3D 프린팅 해준다. 부품의 숫자는 줄이고 순환 효율은 높여 부품의 무게를 줄일 수 있게 된 것.

BMW에는 BMW Additive Manufacturing Center 라고, 3D 프린팅 생산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부설 기관이 있다. 10년여 동안 거의 20만개의 부품들을 3D 프린팅으로 제작, 개발, 디자인하여 생산 현장에 적용해왔다. 예로, ‘18년 24h 르망에서 데뷔한 BMW M8 GTE가 3D 프린팅 기술로 완성됐다.

24시간 동안 펼쳐지는 레이스(포드 V 페라리 영화를 보면 레이서들이 순서 바꿔가며 밤낮 레이싱 한다)에서 헤드램프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다. 가로등 없는 트랙이나 야간 주행 시 램프의 성능은 레이서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최대 72시간 동안 계속 켜져 있어야 할 헤드램프. 열 과부하를 이겨낼만큼 강해야 하므로 램프만을 위한 냉각 장치가 따로 필요하다. 여기서 문제는, 기존 제작 방식으로는 소량의 냉각핀 제작에 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고, 효율적인 열 배출을 위한 형상은 매우 복잡하다. 여기서 3D 프린팅 기법이 빛을 발하고 M8 GTE 전용 헤드램프 냉각핀을 제조하여 적용했다. 

BMW는 ‘18년 독일에 액 132억원을 투자해 새로운 3D 프린팅 기술 공장을 열었다. 현지에서 필요한 부품을 바로 생산해 공급한다는 목적으로 일종의 시범 공장이다. 

AIRBUS

항공산업에서도 3D 프린팅의 역할은 크다. 2016년, 사상 최초로 3D 프린팅 무인 비행기가 탄생했다. 유럽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가 만든 것으로 주인공 이름은 토르다. 3D 프린팅으로 동체와 부품을 제작했으며, 사람이 안타니 창문은 없다. 제작한 부품 또한 가벼우면서 제조 과정에서 폐기물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3D 프린터 표 비행기다. 이점은 제조 공정이 빠르고 비용은 절약하면서, 가벼워 연료를 덜 소모한다. 여기에 플러스되는 것이, 기존 방법보다 더 우수한 부품 생산이다. 에어버스는 2014년부터 3D 프린터로 부품을 만들어왔다. 항공기의 무거운 엔진을 고정시키는 데 사용되는 철탑 부품을 해당 기술로 제작한 것. 에어버스의 미국 경쟁사 보잉 역시 3D 프린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물론, 100% 완벽한 기술은 아니다. 우려 또한 많다. 해커들이 3D 프린터를 교란시켜 원재질 외 이물질을 섞는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실제 사례가 있다. ‘16년 한 연구진이 3D 프린터를 해킹해 제작 중인 프로펠러에 이물질을 섞어 넣어 무인기를 추락시킨 실험을 한 바 있다. 즉, 해커의 공격이 가능함을 입증한 사례다.

 

의료

3D 프린팅 적용의 대표적 산업이 의료다. 개인 맞춤형 의료시대를 맞아 급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퓨처 마켓 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3D 프린팅 의료기기 시장이 2025년 약 2조 3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다. 연평균 11.6%씩 성장하는 셈이다. 이는 만성 질환 증가와 개인 의료에 대한 인식 증가가 성장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3D 프린팅이 적용되는 분야는 보청기, 틀니, 의족, 의수 등 개인 맞춤형 의료기기가 대표적이다. 

가트너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까지 외과 의사의 25%가 수술 전 3D 프린팅 된 환자 모델을 통해 실습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한 선천성 심장질환 수술 시뮬레이션에도 활용되고 있는데, 환자의 의료영상에 기반해 맞춤형 3D 프린팅 심장 모형으로 시뮬레이션하여, 수술 중 심장을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수술결과를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3D 프린팅이 의학에 최초 적용된 것은 2000년대 초반 치과용 임플란트와 맞춤 보철물 제작에서다. 

 

대중에 한층 가까워지다

다양한 산업으로 활용영역이 확장됐지만, 일반인들에게 아직은 낯선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뜻하지 않게 3D 프린터가 대 활약을 하게 된다. 바로 ‘대란’의 주인공 마스크와 산소호흡기 제작 때문이다.

전 세계 공급난을 해결할 대체제로 3D 프린터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의료장비 공급이 원할하지 못한 병원 현장에서는 단물과도 같은 선택지가 되고 있다.

단시간 내 뚝딱 만들어내기 위해 도입된 구원투수가 3D 프린팅이다. 대규모 설비 필요 없이 설계도와 재료만 바꾸면 필요한 물건을 바로 찍어낼 수 있다. 주요 기업을 살펴본다.

미국 비영리단체 알프라임은 재사용 가능한 마스크를 생산한다. 개당 제작비는 2~3달러에 불과. 3D 프린터 28대를 종일 가동하며 하루 약 140개씩 만든다. 비영리단체로서 마스크 제작 오픈소스도 무료로 공개했다. 약 36만원짜리 보급용 3D 프린터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

 

마스크 못지않게 서양에서 기근현상을 일으킨 것이 인공호흡기다. 중증환자가 속출하다보니 한정된 호흡기로는 부족했던 것. 이탈리아 기업 이시노바는 8시간마다 바꿔야 하는 산소 호흡기 마스크용 밸브를 3D 프린터로 생산해 하루 100개씩 주변 의료시설에 무료로 공급했다. 이시노바는 6시간 만에 밸브 구조를 똑같이 모방해 제작하는 데 성공한 것인데, 3D 프린터로 만들어낸 산소 호흡기용 밸브는 한 개에 1유로(약 1300원)가 넘지 않을 만큼 저렴하다.

 

폭스바겐그룹은 폭스바겐그룹 거의 대부분의 공장에서 집중적인 안면보호구용 홀더 제작에 나섰다. 볼프스부르크와 잉골슈타트에 위치한 3D 프린팅 센터 뿐 아니라 아우디와 벤틀리, 부가티, 만트럭버스, 포르쉐, 폭스바겐승용차, 폭스바겐상용차, 폭스바겐그룹컴포넌트, 폭스바겐모터스포츠의 생산공장에서도 제작이 진행됐다.

 

코로나19로 대부분의 제조 공정을 중국에 둔 기업들은 깨우친 바가 많았을 것이다. 즉 서플라이체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경험했으니, 이를 보완할 수 있는 3D 프린팅 산업디 더욱 커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예로, 이번 사태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곳 중 하나인 애플이, 앞으로는 디자인을 공유하고 3D 프린터로 어디서든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대한다면 ‘2번 실수 하는 법’은 없을 것이다.

이미 아마존, 구글, 애플 등 미국 혁신기업들이 더 좋은 제품을 더 빨리 디자인하기 위해 3D 프린터를 이용하고 있다. 우리 역시 삼성, LG 같은 글로벌 기업이 트렌드를 빠르게 리딩하기 위해선 3D 프린팅에 주목해야 한다. 시장에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반복되는 실험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3D 프린터로 새로운 디자인 등을 빠르게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